카지노 : 작가, 언론인, 사회운동가, 장발장은행장, 전 진보신당 대표 등. 여러 직함이 있는데, 그가 쓴 책을 청년기에 감명 깊게 읽어서인지, 나에게 홍세화는 ‘홍세화 선생’이다. 기사 마감 작업을 하던 4월18일 정오. 그의 부고를 접하고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ai주식/주식ai : 지금은 아니지만 십몇 년 전에 근처 동네에 살아 더러 만날 일이 있었다.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출간 이후 그가 귀국해 벌인 활동이나 기여 같은 큰 얘기보다 동네에서 마주쳤던 ‘사소한 기억들’이 먼저 떠올랐다.

스물대여섯 명이 참석한 한 진보 정당 지역 모임에 가본 적이 있다. 그도 그 자리에 있었다. 밥을 다 먹고서 한 명씩 일어나 자기소개를 하고, 처음 본 이들의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는지 자기가 앉은 자리에서 시계 방향으로 한 사람씩 이름을 불러보자고 했다. 그의 제안이었다. 다소 어색할 수 있는 자리였지만, 모두들 퀴즈를 푸는 것처럼 즐거워했다. 직업도 다양하고 처음 보는 이들도 많은 자리였는데 그는 왼쪽 사람부터 오른쪽 사람까지 이름을 열심히 기억했고, 다 맞혔다. 다들 박수 치고 노는 동네의 흥겨움 같은 게 있었다. 과거 민주노동당이 어느 정도 비례득표율을 거두기 시작할 때, 그런 지역 단위 모임이 많았다고 한다(진보 정당 20년을 다룬 이번 호 커버스토리에서 전혜원 기자는 그런 지역 모임이 진보 정당 도약의 발판이 되었다고 썼다). 그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지식인이었는데, 지역 모임에 충실했다. 어느 글에선가 그는 “시어질 때까지 수염 풀풀 날리는 척탄병이고 싶다”라고 썼는데, 그 문장 그대로인 것처럼 보였다.

지난해 7월, 그때 그 동네의 몇몇 사람과 서울 마포에서 어울린 게 마지막이었다. 그는 전립선암으로 투병 중이었다. 병으로 커피를 끊게 돼 그게 아쉽다고 했다. 일행 중에 의사가 있어서 “커피 한 잔은 드셔도 된다”라고 조언하자 환하게 웃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날, 그 자리에서 자신이 관여하는 인권단체의 회원 가입서를 돌렸다. “선생님, 지금도 그러세요?”누군가 말하며 다들 웃었다. 그날 그 단체에 가입했다. 우리는 동네 시장 근처에서 단체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 동네 사람들과 연말에 다시 만나기로 했으나 그는 건강 문제로 나오지 못했다. ‘커피 한 잔 마셔도 된다’는 말에 웃던 모습을 마지막 기억으로 간직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싶다. 홍세화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온화한 기품을 보여준 한 진보적 지식인·운동가의 명복을 빈다(1947-2024).기자명차형석 편집국장다른기사 보기 [email protected]#홍세화#진보신당#민주노동당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