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하지만반전인생을살고있는혹은반전인생을살고싶은사람들의이야기.[편집자말] 남편이 33개월 된 막내가 잠이 든 사진을 보냈다. 올해 3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어서 적응 기간을 1주일 정도 보낸 후, 처음으로 낮잠을 자보기로 한 날이었다. 평소 낮잠을 자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잠이 들었다니, 놀랍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했다.

그렇게 적응을 해 가는 한 달 동안, 약은 잘 먹었는지, 컨디션은 어떤지, 점심은 잘 먹었는지, 어떤 놀이를 하면서 놀았는지 같은 어린이집 생활 전반에 대한 내용을 남편을 통해 전해 들었다.

어린이집과 소통하는 앱인 키즈노트를 남편 휴대폰에만 설치했다. 아침에 등원하면서 어린이집에 투약 의뢰서를 내야 하거나, 하원 시간에 일이 생겨 30분만 늦게 갈 수 있냐는 요청이 있을 때마다 나도 키즈노트를 설치해야 하나 싶지만, 이내 마음을 접는다.남편을 통해 전달할 내용을 전하고 만다.

시시때때로 울리는 학교 알람
큰사진보기 ▲ 아이 셋의 알림장을 모두 남편이 맡게 되었다. 학교 소식을 전달받는 학교 알림앱.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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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중학생이 된 큰아이가 유치원생일 때부터 초등 6년 내내, 그 사이 둘째 아이가 유치원과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동안 스마트폰 앱을 통해 전달되는 알림을 받았다. 특히 3월 학기 초에는 제출해야 할 서류도 많고 확인해야 할 알림도 많다.

시시때때 스마트폰에 울리는 알림은 그저 알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뭔가를 챙겨야 하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기억했다가 남편에게 도움을 청하는 전 과정에 신경이 쓰였다.

혹시 내가 놓쳐서 아이가 불편할까, 혹은 학교에서 당황스러울까 전전긍긍하면서 꼼꼼히 챙기려 하다 보니 알림이 울릴 때 마다 긴장이 되었다. 지난 8년 동안 그냥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엄마니까 아이들 챙기는 건 당연하지 생각하면서.

그러다 최근 내가 동네책방을 열 준비를 하느라 바빠지면서, 남편이 막내를 맡길 어린이집을 알아보고 입소 상담을 하게 됐다. 그때 가기로 한 어린이집이 키즈노트 앱을 통해 소통한다는 말을 들었다며 남편이 먼저 휴대폰에 설치를 했다.

아기가 어린이집에 입소하기 전 챙겨야 하는 서류들을 스스로 알아서 챙기고, 궁금한 건 선생님과 소통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느끼던 부담감은 없어 보였다. 그 모습이 신기해 중학생이 된 큰 아이네 학교 알리미까지 남편에게 설치하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흔쾌히 그런다고 했다.

내 휴대폰에는 초등학교 소통 앱이었던 이알리미가 이미 있으니, 초등학생인 둘째의 소식만 챙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둘째네 반은 담임선생님과 소통할 수 있는 다른 앱을 설치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둘째의 알림장까지, 아이 셋의 알림장을 모두 남편이 맡게 되었다.

습관적으로 “어머니” 부르는 기관들
큰사진보기 ▲ 남편은 알림 내용을 보며 아이에게 수학 숙제를 했는지 챙기고, 생존 수영 신청서를 제출했는지 확인한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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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남편이 말했다. “어린이집, 초등학교, 중학교 세 군데서 하루종일 무슨 이렇게 알림이 많이 오냐?” 그렇게 알림을 받기 시작한 남편은 퇴근하고 돌아와 아이들한테 숙제는 했는지, 단원평가는 잘 봤는지, 학부모 동의서 받아오라고 한 건 어디 있는지 같은 걸 챙긴다.

아이들이 미리 내놓지 않아도, 기한이 다 된 동의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건 아이가 챙기는 거라고 선을 긋는다.

나는 아이들 것을 못 챙기면 모두 내 탓이라고 여겼다. 아이를 잘 못 키워서 습관이 안 잡혔다는 생각부터, 제대로 챙기지 못 해서 아이가 학교에 가서 선생님한테 혼나는 상상까지 이어진다. 그러니 알림이 울릴 때마다 한숨부터 나왔다.

스트레스를 받는 줄도 모르고 하던 일을 멈추고 나니, 비로소 내게 그 일이 스트레스였음을 알게 됐다. 남편이 아이에게 수학 숙제를 했는지 챙기고, 생존 수영 신청서를 제출했는지 확인할 때 나는 아이들과 오늘 친구와 뭐 하고 놀았는지, 간식으로는 어떤 걸 사 먹었는지 같은 걸 묻는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먹고 싶은 간식은 있는지, 어디에서 누구와 놀다 왔는지, 요즘 축구는 어디서 하는지 같은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다. 아이가 문방구에서 사고 싶어 하는 게 뭔지, 요즘 용돈은 어디에 쓰는지 얘기를 하는 일이 즐겁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 얼굴을 보자마자 엄마 사인 받을 거 없냐면서 알림장을 내놓으라고, 선생님이 내 준 학습지 어서 하라고 아이들을 닦달하지 않으니 ‘엄마’ 역할이 훨씬 가벼워졌다.

며칠 전, 남편이 아이들 알림장을 보여 주면서 “선생님은 내가 아이디도 ‘○○아빠’라고 했는데 매번 이렇게 ‘어머님’으로 시작하는 메시지를 보내신다~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 꼬맹이 어린이집도 그러고. 내가 아빤지 아는 데도 말이야” 한다.

각자에게 맞는 부모 역할을 하기

그 말을 듣고 그동안 왜 그토록 아이 학교 알림장을 챙기는 일이 엄마의 역할이라고만 생각했었는지를 이해했다. 무의식적으로 불리는 ‘어머님’ 호칭에, 나 역시 무의식적으로 따르고 있었다.

남편은 본인이 보호자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데도 ‘어머님’으로 불리니 자기 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엄마’를 대신해 알림만 받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어머니’라는 호칭이 바뀌어야겠다는 이야기를 이어 가다가, 한 달 넘게 아이들 알림을 받아보니 어떠냐고 물었다.

남편은 “좋아~” 하고 답했다. 어떤 게 좋으냐고 되물으니 선생님하고 바로바로 소통할 수 있으니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아이들 생활을 더 잘 알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아이들의 생활이 궁금할 때마다 나를 통해 전해 들어야 했는데, 내가 아기를 돌보느라 정신없어 보이는데 물어보기 미안할 때도 있었다면서.

그렇게 내리게 된 결론. 아하! 엄마 역할, 아빠 역할 따로 있는 게 아니고 각자에게 잘 맞는 부모의 역할이 있는 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