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여당이 그래도 한숨을 놓는 모양이다. 일각에서 ‘윤석열 리스크’로까지 언급되던 이종섭-황상무 문제의 실마리를 정권이 어느 정도 풀어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이 황당한데다 앞으로도 문제는 남아 있다. 무엇보다 본질적 의문을 해소할 의지가 없는 상황에 또다른 논란이 더해지는 게 아닌지 관심이다.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사퇴는 사태 발발 6일째인 20일 새벽에야 이뤄졌다. 이날 오전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이종섭 대사의 자진 귀국 예정을 직접 알리면서 갈등은 봉합 수순으로 가는 듯한 모양새다.

그러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동아일보는 21일 기사에서 “윤 대통령은 사흘 전만 해도 당선인 대변인을 지낸 김은혜 전 홍보수석, 캠프 수행실장이던 이용 의원 등의 ‘황 수석 사퇴-이 대사 조기 귀국’ 입장에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게는 직접 전화해 진위를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19일 밤까지도 아슬아슬한 기류가 계속됐다”고 전했다. 대통령은 막판까지 이종섭 호주 대사 자진귀국과 황상무 수석 사퇴라는 해법을 수용하지 않으려 했던 거다.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듯, 총선 앞두고 이런 정도의 여당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재간은 없다. 그런데 이를 두고 이렇게까지 시간을 끌고 망설인 이유는 뭘까? 그걸 이해할 수 없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대통령실은 언론에 이런 저런 ‘대안적 해석’을 제공하며 대통령 리더십에 대한 의구심을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통령은 이미 여당 요구를 수용할 결심을 한 상태였지만 추가 논란을 우려해 타이밍을 보고 있었던 것 뿐이라든지 하는 식이다. 21일 주요 언론 중에선 조선일보가 이런 식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결국 사후적인 ‘마사지’에 지나지 않고 다른 보도 내용과도 충돌한다. 대통령 리더십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거나 “예측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거다. 가령 중앙일보는 21일 사설에 이렇게 썼다. “현 정부를 두고 많은 사람이 ‘예측이 불가능한 정권’이라며 답답해 한다. 상식에 어긋나고 총선에 악재인 게 뻔한데도 대통령이 그런 방향으로 행보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참모들도 잘 모르겠다고 하니 더욱 안타깝다”

비슷한 얘기가 전날 조선일보 사설에도 나온다. 조선일보는 20일 사설에 여당이 이종섭 대사 출국을 반대했지만 대통령이 이를 무시했고 황상무 수석에 대한 사퇴 요구도 거부하고 있다면서 “상식에 안 맞고 선거에도 악영향을 줄 일인데 윤 대통령이 이러는 이유를 참모들조차 잘 모른다고 한다. 대통령실 안팎에선 언론과 여론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나오면 더 거꾸로 간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썼다.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고집으로 일관한다는 점에서 ‘독선’과 ‘오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종섭 대사의 급작스런 귀국을 정당화하기 위해 방산 관련 주재국 대사 회의가 급조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결국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애초 이종섭 대사는 총선이 끝난 이후인 4월 말 모든 공관장이 참석하는 재외공관장 회의 때 귀국해 공수처 수사를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25일의 회의는 급작스럽게 등장한 일정이다. 한겨레, 동아일보 등 보도에 의하면 이 회의는 이종섭 대사 귀국 예정일이 공개된 20일 당일에야 최종 확정됐다고 한다. 회의 기간, 세부 일정 등도 발표 직전까지 확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일정이 확정되자마자 서둘러 이종섭 대사 귀국 사실을 언론에 공개한 셈이다.

이렇게 무리한 회의 일정을 굳이 만든 이유는 뭘까? 이종섭 대사가 별 이유 없이 자진 귀국할 경우 사실상 대사 임명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하는 게 되기 때문 아니겠는가?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용산과의 갈등은 끝났고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은 운명공동체라고 했는데, 결국 대통령과 여당이 합의한 바는 ‘이종섭 대사 임명 자체엔 아무런 문제가 없고, 귀국하는 것은 일 때문이며, 따라서 도주한 사실도 없다’는 것일 테다. 그런데 중앙일보 등의 보도에 따르면 이종섭 대사는 급조된 회의 일정이 끝나도 총선이 끝날 때까지 국내에 머문다고 한다. 호주 대사 부임이 매우 급한 듯, 황급히 출국하더니 꼭 그런 건 아니었다는 것일까? 어찌됐건 “도주한 건 아니다”란 얘기를 하는 게 최우선이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 듯하다.

언론은 정권의 공수처에 대한 압력을 우려하고 있다. 이종섭 대사와 여당이 빠른 조사를 요구하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공수처가 조사를 제대로 할 준비를 마쳤다고 보긴 어렵기 때문이다. 압수수색 등 본격 수사는 지난 1월에야 시작됐고 지금은 압수물 분석 단계에 불과해 ‘채상병 사건’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이종섭 대사를 조사할 차례까지 가려면 순서가 한참 남았다.

그럼에도 정권과 여당의 등쌀에 못이겨 공수처가 이종섭 대사 조사 일정을 잡는다면 그건 ‘시늉’에 지나지 않고 정권과 여당에 좋은 일 해주는 것이며, 결국 수사는 차질을 빚게 된다는 게 언론에 인용된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종섭 장관의 출국 직전 ‘4시간 조사’를 허용한 공수처의 전례를 보면,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어 보인다. 용산과 여당이 ‘공수처에 대한 압박과 공격’으로 갈등을 봉합하는 출구전략을 모색할 경우, 공수처가 이를 감당할 수 없을 거라는 얘기다.

용산과 여당은 비례대표 공천을 두고도 한판승부를 벌인 모양새다. ‘찐윤’이라는 이철규 의원이 공개적인 반발을 이어간 끝에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명부 일부 수정이 이뤄지긴 했지만, 이 과정 역시 지저분해보이긴 마찬가지다.중앙일보는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18일 비례대표 후보가 공개되기 10여분 전에야 명단을 받아본 윤 대통령은 상당한 불쾌감을 표시했다고 한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윤 대통령이 비례대표 명단을 본 뒤 ‘내가 사람을 너무 믿었다’는 취지로 배신감을 토로했다는 말도 들린다”는 여권 관계자의 말도 전하고 있다. 검찰 수사관 출신이자 대통령의 옛 술친구로도 알려진 주기환 전 국민의힘 광주시당 위원장이 당선권 밖 비례대표 순번을 배치받고 반발해 사퇴한 것에 대해 “윤 대통령과 교감한 결정이 아니겠냐”는 분석이 여권에서 나오는 대목도 있다.

‘교감’이라고 하면 장예찬 후보의 무소속 출마에도 비슷한 해석이 나온다. 조선일보는 20일 사설에 장예찬 후보를 ‘장예찬씨’로 지칭하며 “놀랍게도 윤 대통령이 장씨의 무소속 출마를 권했다는 설이 돈다. 이에 대해 장씨는 잘라서 부인하지 않으며 뭔가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고 대통령실도 아무 반응이 없다”고 꼬집었다.

대통령이 여당 지도부와 공천을 놓고 갈등한 끝에 자기 편인 후보들의 비례대표 후보 사퇴나 무소속 출마까지 권유했다면, 그걸 어떻게 봐야 할까? 구체적인 ‘그림’이 없어서 그렇지, 이 정도면 과거 ‘옥새파동’만큼이나 충격적인 얘기 아닌가? 앞서의 ‘독선’과 ‘오기’에 ‘파렴치’를 더해야 할 일일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 평가를 받을 일이란 걸 대통령과 정권 핵심부는 전혀 모르는 것 같다. 그렇다면 유권자들이 판단할 수밖에 없다. 여당의 여러 묘수(?)와 야당의 분열에도 ‘정권심판론’이 사그라들지 않는다면, 그건 개별 사건 탓이 아니라 바로 이런 대통령의 리더십 때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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